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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향에 대한 집착이 발효제품을 만들어냈다.

셰프뉴스|2016-03-28 오후 15:00|434|0

| 원료마다 까다롭게 추출 조건을 조절하는 이유도 맛과 향 때문이다


TV 맛집 프로그램에서 설렁탕 집을 소개하는 장면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솥에 불을 때고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왜일까? 그래야 감칠맛 성분이 최대한 녹아 나오기 때문이다. 먼저 사골을 찬물에 담가 물을 여러 차례 갈아주는 방식으로 뼈에 함유된 피를 빼서 국물이 탁해지고 잡맛이 나는 것을 막는다. 그 상태로 푹 삶는데 오래 삶아야 뼈와 콜라겐에서 아미노산과 칼슘, 젤라틴 등 가용 성분들은 더욱 많이 용출된다. 그리고 향 물질은 휘발되어 잡내와 고유한 특성은 사라져 어떤 음식에 넣어도 어울리는 육수가 된다.

이처럼 맛과 향은 원재료에서 적절히 꺼내야 느낄 수 있다.

 

| 힘들게 땔감을 확보하여 음식을 가열하는 것도 맛과 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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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요리는 음식도 화려하지만 요리사의 칼솜씨 또한 매우 섬세하다. 물렁한 두부를 실처럼 가늘게 잘라서 만든 요리가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런 칼솜씨의 배경에는 고단한 삶의 일부가 배어 있다. 바로 땔감의 부족이다. 과거에는 가스도 없었고 전기도 없었다. 먹을거리 확보 못지않게 땔감의 확보도 생존에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벼농사를 지을 때는 넓은 논 가운데서 생활하다 보니 변변한 땔감을 구할 수 없었다. 따라서 가장 적은 열로 신속히 요리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칼로 잘게 자르는 방법이다. 음식 재료를 잘게 자르고 기름에 순식간에 볶으면 가장 적은 열로 음식을 골고루 익힐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요리에서 가열 과정이 중요한 것은 원래는 영양과 안전 측면이 강했지만 지금은 맛의 측면이 더 강하다.

대부분의 요리는 가열을 한다. 가열을 해야 제대로 맛이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열은 생각보다 대단히 복잡한 반응이다. 캐러멜 반응, 마이야르 반응, 지질의 열분해, 황 함유 물질의 변화 등에 복잡한 반응이 일어나 맛과 향이 변하고 단백질과 탄수화물이 변하여 물성마저 변한다. 마이야르 반응만 하여도 너무 복잡하여 아직 그 반응의 전모가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반응은 요리뿐 아니라 기호식품에도 관여한다. 커피의 생두나 코코아 열매는 별로 맛이 없고, ‘발효, 건조, 로스팅’의 3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맛과 향이 만들어 진다.

 

만들기 까다로운 발효제품에 대한 집착도 맛과 향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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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이 왜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장류를 만들어 먹었을까? 당연히 맛 때문이다. 발효는 세균이나 효모 등의 효소를 이용하여 탄수화물을 당류를 거쳐 산이나 알코올로 분해하고 단백질을 글루탐산 등 아미노산으로 분해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향기 성분도 같이 만들어 진다. 발효를 통해 만들어 지는 것은 주로 분해된 당, 알코올, 유기산 같은 맛 성분이지 향은 별로 없다. 하지만 향은 워낙 적은 양으로도 감지되기 때문에 충분히 강하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발효는 천천히 일어나는 것이 좋다. 미생물은 20분마다 2배씩 증가하기에 한 마리의 세균도 조건만 맞으면 이틀이면 지구보다 커질 수 있다. 조건이 좋으면 어떤 유기물이든 하루면 충분히 분해되고 남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효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은 영양은 고갈되고 발효로 만들어 진 젖산, 알코올이 강력하게 미생물 증식을 막기 때문이다. 이런 악조건에서 천천히 살아가면서 천천히 발효되면 재료와 무관하게 좋은 향을 가지게 된다. 솜씨 없이 담근 김치도 잘 익히기만 하면 아주 맛있는 김치가 되는 마술이 벌어지는 것이다.

 

어떤 제품을 오래 숙성시키는 이유도 맛과 향 때문이다

가열로 만들어 진 향의 특징은 무엇일까? 가열로 급속히 만들어 진 향은 금방 변하기 쉽다. 커피전문점에 가서 커피를 볶거나 갈 때의 향을 맡으면 대단하다. 제과점에서 빵 굽는 냄새도 대단하다. 그런데 이런 향은 막 만들었을 때만 유효하고 시간이 지나면 금방 사라진다는 단점이 있다.

왜 그럴까? 로스팅 향의 결정적인 물질들은 질소나 황을 함유한 물질이 많고 이것은 후각 수용체와 결합력이 매우 강하다. 아주 미미한 향으로 그렇게 강력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십억분의 일ppb 수준으로 이들 물질이 조금만 변화되어도 우리는 전혀 다른 향으로 느끼기가 쉽다. 그래서 숭늉은 상품화하기 힘든 것이다. 가장 고소한 느낌은 사라지고 쉰 듯한 느낌이나 아주 약해진 고소함만 남는다. 두부도 끓여서 막 만들 때는 맛이 있다. 그러나 이 맛도 로스팅 향이 주는 맛이라 금방 사라진다. 그래서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두부는 맛이 뛰어나기가 힘들다.

이처럼 향은 기본적으로 사라지고, 신선한 느낌은 산화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묵은지, 된장, 와인, 위스키 같은 것은 숙성이 되어야 맛이 있다고 한다. 어떤 이유일까? 오래 숙성하면 맛이 좋아지는 현상이 일반적일까 아니면 나빠지는 것이 일반적일까? 나빠지는 쪽이 일반적이고 좋아지는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식품은 오래 두면 변하기 마련인데 제대로 통제하지 않으면 급격히 나쁜 쪽으로 변한다. 밀폐가 부족하면 공기 중의 산소에 노출되어 산패가 심해지고, 수분이 증발해서 말라버리기도 하며, 휘발성 성분이 증발해서 향기가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심지어 원치 않는 미생물에 오염되어 이취나 부패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맛이 좋아지기는커녕 식품으로서 가치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숙성하면 맛이 좋아지는 식품도 모든 조건을 제대로 갖추어질 때만 가능한 것이지 저절로 좋아지지는 않는다. 적당한 용기에 담아서 적절한 온도와 환경에서 보관해야 한다. 온도가 너무 높거나 자외선 같은 빛이 들어가면 식품 성분이 분해되어 원하는 성분은 감소하고 원치 않는 성분이 증가할 수 있다. 그래서 젓갈은 토굴에서 숙성을 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숙성하면 맛이 좋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숙성하는 기간 동안 향기 성분이 늘어나기 때문일까? 숙성하면 어떤 성분은 늘어나고 어떤 성분은 줄어드는데 전체적으로는 감소한다. 와인 숙성 과정에서도 전체적으로는 향의 손실이 일어나지만 부분적으로는 숙성된 향의 증가하여 품위를 높이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만 숙성을 하는 것이지 아무 와인이나 숙성하지 않는다. 숙성은 고농도 알코올 발효가 일어나고, 타닌 성분이 많고, 품종 특성이 약한 와인이 적당하다. 그리고 오크통에서 담가 오크 나무의 향으로 향 손실을 보상하는 것이다. 오크통에서 나오는 독특한 향은 사용할수록 감소하기 때문에 1~3번만 사용 가능하다. 그래서 굳이 번잡한 오크통 대신에 스테인리스 탱크에 오크 칩을 넣기도 한다. 오크 나무의 향기 성분이 천천히 녹아 나오면서 알코올과 반응하여 더욱 품위 있는 향으로 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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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숙성은 발효 과정에서 생기는 지나치게 자극적인 저분자 물질을 줄이는 과정이기도 하다. 양주는 아주 극한까지 분해가 일어난 상태이다. 향기 성분은 분자량이 17~300까지의 물질로 분자량이 적은 것은 휘발성이 강하여 강한 첫인상을 주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이다. 분자량이 클수록 휘발성이 줄어들어 감지되는 향이 줄어들고 중간 크기 분자가 대체로 가장 우아한 향취를 지닌다. 술이 숙성이 되면 저분자의 반응성 분자들이 다른 분자와 결합하여 자극성이 줄고 온화한 풍미의 분자로 변환된다. 지방족 알데히드가 알코올과 반응하면 알코올의 자극취가 감소하는 것처럼 특히 케톤과 알데히드류의 분자가 이런 작용을 한다. 이런 반응은 알코올의 함량이 높을수록 잘 일어난다.

숙성 중 가장 크게 변하는 맛은 레드 와인의 쓴맛과 떫은맛 감소이다. 페놀 화합물은 색소와 타닌성 물질을 구성하면서 포도의 풍미와 바디감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은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의 향이 차이를 설명하기도 한다. 그런데 과도한 타닌은 쓴맛이 강해서 부정적인 영향이 커진다. 이런 타닌이 소량의 산소가 있으면 아세트알데히드의 도움으로 안토시아닌과 타닌의 중합반응을 일으킨다. 타닌은 중간 크기의 애매한 용해도를 가질 때 쓴맛이 크며 중합반응으로 분자가 커지면 오히려 혀의 미각 수용체에 반응하지 못하여 쓴맛이 사라진다. 맛도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오래 숙성해서 좋은 것은 이처럼 나름 뚜렷한 이유가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식품은 이러한 과정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이러한 숙성 조건을 갖춘 것도 아니다. 막연히 숙성을 오래할수록 좋을 것이라는 기대는 부질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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