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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가 주방을 떠나게 되는 과정 6단계

셰프뉴스|2015-11-26 오후 14:46|1,313|0


Editor’s Note : 본 콘텐츠는 Thrillist에 소개된 why 8 chefs quit the kitchen을 번역, 재구성했습니다.

주방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허락된다는 모자, 토크Toque. 하얗고 길쭉하게 솟아오른 셰프의 모자는 일종의 면류관이다. 제왕이 땅을 정복했을 때나 쓰던 면류관의 의미는 주방에서도 비슷하게 사용할 수 있다. 이 권위의 상징은 주방에서 이뤄지는 모든 작업을 지휘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과 능력이 있음을 상징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셰프의 명령 없이는 요리를 시작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권위는 막강한 만큼 얻기가 쉽지 않다. 오랜 동안의 배움의 시간, 수련의 시간을 견뎌야 하고, 치열한 경쟁세계인 주방에서 뒤처지지 않고 살아 남아야 한다. 주방장의 위치까지 올라간 사람이라면 만고의 세월을 버텨낸 사람임은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탈하게 탄탄대로를 걸어온 사람 또한 아닐 것이다. 주방이라는 곳도 사람이 사는 곳인지라 끊임없이 사람 사이에서의 마찰이 일어나고 실제로 타 직종과 비교해 근무처를 옮기는 빈도가 훨씬 잦다. 심지어는 셰프가 요리를 관두고 직종을 바꿔버린다는 소식도 종종 들린다.

쉽게 얻을 수 없었을 주방에서의 경험과 권위를 포기한 그들의 사정은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주방을 떠나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듣기 위해 8명의 전 셰프Ex-Chef를 찾아갔다. 그들이 말하는 주방을 떠나게 된 과정을 단계별로 나누어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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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ww.thrillist.com

Stage 1. 달콤한 첫 경험

 

제니 맥코이Jenny McCoy
前 페이스트리 셰프/現 자신의 베이킹 브랜드 운영

저는 젊었고, 요리가 너무 즐거웠어요. 미친 듯이 일했습니다. 당시 파인 다이닝 세계가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고든Gordon 에서 일할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더 경험이 많은 요리사들을 만났죠. 그들 모두는 저보다 더 진지하게 일에 임했고, 이력서를 훌륭하게 채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종종 “이거 읽어봐!” 또는 “이 음식은 꼭 먹어봐야 해!”라는 등의 조언을 아끼지 않았어요.
선배 요리사의 가르침 덕분에 내 경력은 어디에 내놔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일하는 것이 아닌 정확하게 경력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었죠.
모든 사람의 젊은 시절은 아마추어처럼 어설프잖아요? 저도 가끔은 프로답지 못했음을 인정합니다. 그래도 제 주변에 있던 선배 요리사는 나를 형제처럼 여겼고, 셰프는 부모님처럼 나를 대해주었습니다.

 

케이스 파미에Keith Famie 
前 레스토랑 운영/現 현재 다큐멘터리 제작

요리는 내 삶 그 자체였어요. 요리와 함께 살다시피 할 정도였죠. 제 열정의 근원이었고 언제나 음식 세계를 탐험하는 일에 불타올랐습니다. 요리하는 일은 저를 세상과 연결해주는 통로였습니다.

 

제이슨 쉬한Jason Sheehan 
前 요리사/現 음식 비평가(제임스 비어드상 수상)

저는 정말 많은 곳에서 일했어요. 버팔로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1년 정도 일했던 적이 있어요. 주방은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완벽했습니다. 젊은 요리사들은 셰프의 첫 공연에 출연하는 것처럼 아름다워 보였죠. 한마디로 대단한 동료들이었습니다. 곧바로 일과 사랑에 빠졌고 스트레스나 심리적인 압박마저도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주방의 생활 방식도  완벽하게 들어맞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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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 www.thrillist.com

Stage 2: 이별의 징조

제니 멕코이

주방의 일은 고단합니다. 환경도 매우 험하죠. 이 직업은 협업과 신체적인 노동력을 필수로 합니다. 열정적이어야 하고, 희생할 줄 알아야 하며, 완전히 연소할 정도로 몰입하기도 해야 합니다. 지금 말한 대로 살다 보면 언젠가는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도대체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하지? 내 주변에는 왜 이런 인간들뿐이지?”

아무리 열정이 넘치던 사람도 그렇게 느낄 수 있습니다. 점점 애증의 관계로 변하기 시작하죠. 그래서 이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마조히즘masochism (육체적 학대를 받는 것으로 성적 쾌락을 느끼는)이 필요합니다.

 

트레버 베일리 Trevor Bailey 
前 힐튼 호텔 수석 요리사/現 대학교수

제가 학생일 때 일했던 레스토랑에서의 일화입니다. 당시 셰프는 제 행동이 너무 느리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셰프는 뜨겁게 달궈진 팬을 내 등에 대면서 “너무 느리다”고 나무랐습니다. 뜨거워서 놀란 건 둘째치고, 순간적으로 “내가 왜 여기서 일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때 나는 19살이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경험도 있습니다. 80년대 미국 중부지방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일할 때 있었던 일인데요. 그 레스토랑에서 멘토였던 셰프가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 같네요. 그 셰프는 저에게 “흑인은 아름답지. 그러나 주방에서는 그렇지 않아. 상처받으라고 하는 소리는 아니야.” 쓸데없이 내뱉은 말에 저는 대단히 큰 충격과 상처를 받았습니다. 그때 명확하게 느낀 점은 “그래 내가 주방에서 평생을 일할 수는 없겠구나”였습니다.

 

바톤 시버Barton Seaver 
前 레스토랑 운영/現미국 지리학회, 하버드 T.H. Chan 학교 소속

주방에서 일하는 것, 꿈꿔왔던 일이었음에 의심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방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일화가 있었어요.
D.C. 센트럴 키친의 설립자인 로버트 에거가 자신이 계획한 일에 동참할 수 있겠느냐는 요청을 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제 친구이며 멘토이자 이웃입니다.
그가 하려는 일은 전과가 있어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새로운 길을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일에는 젊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했고, 워싱턴의 생활 패턴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다고 말했습니다. 이 요청에 바로 긍정적인 대답을 했고, 난생처음 해보는 일에 도전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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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3: 마지막 고민

트레버 베일리

호텔에서 일할 때는 정말이지 너무 힘이 들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결국 미팅을 요청했죠. 저는 총지배인에게 “하루에 12시간에서 14시간 일하고, 이렇게 일주일에 6일을 일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간단하게 말하더군요. “아직 부족하다”라고. 그는 제게 더 많은 시간을 일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마치 벽에 대고 이야기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아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겠어. 이렇게 인생을 계속 살아갈 수는 없을 것 같아. 결국, 이 일 때문에 나는 죽고 말 거야.”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
 요리사/現엘 불리 재단elbulli foundation 운영

제가 엘 불리를 폐업하기로 결정한 것은 독단적인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원하는 목적에 도달하고 있었고, 최고 수준에 이르기를 원한다면 변화할 시간과 계획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2009년 11월이 끝나갈 무렵 새로운 오너 줄리 솔러Juli Soler 가 합류했습니다. 그와 저는 엘 불리 레스토랑의 운영을 잠시 멈추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로 다시 열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1월, 우리의 결정을 세상에 알리자 우리는 바로 알게 됐습니다. 우리가 진짜로 미식 연구소를 시작한다는 것을요.

 

바톤 시버

요리하는 일을 그만두기 전 이미 저는 개인적인 흥미나 열정만으로 레스토랑을 운영할 수 없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원하는 수준의 레스토랑에는 끊임없이 찾아오는 사람들과 변화의 시간, 그리고 주인의 세심한 관심이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지쳐버린 제 상태로는 이 모든 변화를 시도할 수 없다는 것이었죠.

 

마리사 망가니Marisa Mangani 
前요리사/現주방 및 바 디자어너

셰프 덤Chefdom(셰프에 대한 맹목적인 인기)은 “어떻게 하다가 지금 일하고는 있지만, 내가 진짜로 원하는 일은 이것이 아니었어”라는 의미로 곧잘 변하곤 합니다. 그러고 나면 스스로 위로하거나 합리적인 이유 몇 가지를 만들어내고선 이 직업을 포기하기로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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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4: 갈라서기

제니 멕코이

마지막 레스토랑은 크래프트Craft 였습니다. 저만의 일을 시작하기 위해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죠. 그동안 동료들과 친하게 지냈었는지, 그들은 제가 떠나는 일에 진심으로 슬퍼했습니다.
언제가 되든지 간에 당신이 레스토랑을 떠나게 될 때는 아마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듣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예정이야?”
아마도 당신이 그동안 모든 일을 제대로 했다면 당신이 좀 더 나은 곳으로 가거나 경쟁사에 다시 들어가는 일이 문제 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당신이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좋은 기회가 되겠죠.
제가 사표를 내던 날 레스토랑이 문을 열기 전 셰프의 서재에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책상 위에 사표를 올려놓고 셰프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셰프가 도착하고 사표를 발견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질문이 바로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갈 예정이야?” 저는 “내 상품을 직접 만들어 팔아볼 예정입니다.” 그러자 그는 “오! 좋아. 축하해! 아주 멋진 생각이야!”라며 격려해줬죠.
하지만 내가 “퍼 세Per se로 갈 예정입니다.” 또는 그와 비슷한 어디라고 얘기했다면 그는 “절대로 이 문을 나가지 말고 여기서 더 일해”라고 했을 것입니다.

 

페란 아드리아

줄리와 제가 폐업하기로 결정하기로 합의한 후 우리의 첫 과제는 이 일을 주방과 홀을 맡은 매니저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공식적인 발표 전에는 이 주제를 신중히 다뤄 달라고 요청했죠.
우리의 결정을 듣고 난 그들은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종종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모든 일은 더욱 선명해졌고, 맴버들은 새로운 역할을 스스로 찾아 나섰습니다.

 

트레버 베일리

주변 사람들에게 제가 그만둘 것이라고 말하는 일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어요. 저를 셰프로만 알고 있었고, 그게 제 이미지의 전부였습니다.
꽤 겁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15살부터 내 나이 삼십 후반까지 나는 주방에서 일만 해왔지. 앞으로 나는 어떤 일을 해야 할까?” 내 이력서에는 음식을 만들었던 일, 그것도 레스토랑과 호텔에서 했던 일이 전부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요리를 그만둔다는 결정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생활이 끝나야 한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모든 책임은 스스로 져야 하는 것이니까요.

 

마리사 망가니

미국 플로리다에 있는 사라소타에 요리사로 취직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한 컨트리클럽에서 셰프로 일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보잘것없는 1년 경력의 요리사일 뿐이었습니다.
그 클럽하우스에서 BLT 샌드위치를 만들었습니다. 너무 쉬운 일만 반복하다 보니 많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참다못해 동료 요리사에게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그거 알아요? 제가 하는 일은 어떤 방해물도 없이 좋아요. 그런데 34살인 저에게 이 일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아요. 저는 어떻게 해야 이 일이 경험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방법을 찾느라 골치가 아플 지경이에요. 더이상 주방에서 일하고 싶지 않아요. 혹시 좋은 아이디어 있나요?” 그러자 그는 “옆 동네에 주방 디자인 회사가 있어. 여기 주방의 설계도 그 회사가 했지.” 저는 지금 디자인 회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웨너 앱센거Werner Absenger
 요리사/現 암 교육 센터 설립

저는 셰프가 되고 싶다는 소원에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주방에서 하는 일이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아버지가 암을 진단받으면서 모든 게 달라졌습니다. 꽤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암을 발견하셨고, 결국 아버지는 6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주방을 나와 암 연구소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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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5: 요리사를 그만두고 나서의 여파

마리사 망가니

나는 편하게 다니던 직장을 나오면서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습니다. 주방에서 나온 뒤로 점점 아침이 오는 것이 두려워졌고, 밤마다 복통을 느끼며 잠들 때가 많았습니다.
14살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요리만 했는데, 인제 와서 그만둔다고 하니 마치 새로운 몸에 내 기억만 주입된 듯이 어색할 뿐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까지 내 삶은 옷 장안의 옷을 고르는 고민 정도였다면 이제는 라이프 스타일 전체를 고민하는 일로 바뀌었고, 상사의 기분을 좋게 하는 일과 고객을 만족하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데 몰두하게 됐습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죠.

 

케이스 파미에

어려운 일이었어요. 내 실제 모습과 달라져야 하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저를 티비 프로그램 ‘Survivor: The Australian Outback’에 출연한 셰프로 알고 있지요. 사람들은 곧잘 이렇게 물어봅니다. “어디로 가면 당신의 음식을 먹을 수 있나요?” “오늘은 어떤 음식을 만들고 있나요?”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글쎄요. 저는 지금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어요” 그러면 사람들은 어떻게 음식 만드는 일을 포기하고 다큐멘터리 감독이 될 수 있었느냐고 계속 물어봅니다. “당신은 셰프잖아요”
제 이전 직업을 사랑해주던 팬들이 실망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예상했으니 참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아이들과 전 부인이 내게 “왜 이 일을 시작했어요? 당신은 요리해야 해요.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잖아요.”라고 말할 때는 정말 힘들었어요. 당시 돈을 잘 벌지 못했고,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지금도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일로 돈을 잘 벌지는 못하지만, 이런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이 제일 빨리 가는 방법이니까요.

 

바톤 시버

주방을 떠나고 몇 년 동안 제 생활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면서 말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셰프죠. 그런데 레스토랑은 없네요. 그렇다면 당신이 진짜 셰프 맞나요? 실제로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미국 지리학 협회에서 활동하고 있군요? 근데 도대체 그런 빛 좋은 개살구 같은 말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들에게 저는 단지  몇 년 동안 국적 없이 떠도는 요리사일 뿐이었습니다.

 

웨너 앱센거

이직을 결정하고 나서의 제 생활은 비교적 수월했습니다. 경력을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결정하는 곳에서 저는 전문가가 알아야 할 영양학과 대체의학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활기를 느낄 수 있었죠. 연구를 시작하면서 의학의 기본은 알 수 있었지만 진짜로 배워야 할 것들에는 완전히 초보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좌절감을 느낄 때면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고 했니?”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요. 사람은 언제나 새로운 환경에서 더 많이 배운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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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ge 6: 향수

마리사 망가니

요리하던 시절이 그립기는 해요. 그러나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정도로 즐거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주말을 쉴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이전에는 월요일에 쉬었거든요. 이제는 주말에 4살 베기 딸과 지낼 수 있어서 너무 만족하고 있습니다. 딸이 학교에 들어가기 전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일에 감사할 뿐이죠. 그리고 식료품점에 가는 일이 너무나 즐거워요. “와! 이제 맥주만 사러 갈 수도 있구나!” 새로운 삶이에요.

 

페란 아드리아

전 아직도 일 년의 반을 칼라 몬조이에서 보내던 시간이 그립습니다. 내가 살면서 가장 일하기 좋았던 곳이었습니다.

 

케이스 파미에에

“레스토랑을 열자”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토요일 밤, 레스토랑에 ‘앉아’있을 때도 당장 일어나 일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겠죠.
제가 가장 그리워하는 것은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순간입니다. 함께 일한 동료들은 마치 제 두 번째 가족과 같은 편안함을 줍니다. 이쪽 분야에서 일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런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감정은 너무나 강렬해서 아직도 주방을 그리워하게 만듭니다.
가끔 영화를 만들다 보면 제작진들은 작은 실수에도 “큰일이다. 이걸 어떻게 수습하지?”라고 말합니다. 주방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일” 정도를 가지고 말이죠.
진짜 문제는 이런 것이죠. 토요일 저녁 400개의 식사 예약이 잡혀 있는데, 어떤 사람이 당신이 만들어 놓은 소스 통 주변에서 유리잔을 놓쳐 깨뜨린 상황. 이런 일이 진짜 큰일 난 것이지 않을까요?
나는 아직도 그렇게도 바쁜 순간에도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는 환경이 그립습니다. 손님들이 그런 사정도 모르고 행복한 식사를 하는 모습을 바라보던 제 자신도 그립습니다. 하루의 모든 작업을 마치고 나서 한잔의 와인을 셰프와 나눠 마시며 “내일도 또 달려보자”라고 말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제이슨 쉬한

아침 일찍 제일 먼저 주방에 도착해 맡았던 냄새가 그립습니다. 첫 손님을 맞았을 때의 느낌. 밀려드는 주문과 온종일 느껴지는 압박감 또는 오늘은 힘든 저녁 시간이 되겠구나! 예측하던 그 느낌 모두가 그립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 위에서 말한 감정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바쁘게 일하고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어려운 순간이 당신의 인생에서 그렇게 큰 문제가 될 것 같은가요? 오히려 나는 이 세상에 그렇게 문제 될 것이 많지 않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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