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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셰프의 에세이 #2]노쇼, 그래도 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집념

셰프뉴스|2015-10-14 오후 16:31|3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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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s Note : 서울 방배동에 있는 더 그린 테이블에는 김은희 셰프만 이야기할 수 있는 치유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감수성이 넘치지만, 과학적인 요리를 선보이는 그녀만의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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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그린테이블 쿡북>에는 김은희 셰프가 레스토랑의 문을 열고 겪었던 이야기와 메뉴에 대한 고민의 결과물이 아름답게 실려있다.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요리를 책으로도 만날 수 있다.

프렌치 요리는 비싸다는 말을 많이 듣게 마련이다. ‘더 그린테이블’의 처음 취지는 ‘캐주얼, 고급 프랑스 퀴진Casual, Haute French Cuisine’, 즉 격식을 차리지 않고 고급스러운 프랑스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요리사들이 오랜 시간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손님들은 편하게 즐길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단순하지 않은 맛으로 깊이 있는 요리를 하고 싶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음식에 대한 고집스러운 신념을 버리지 않는다면 점점 발전해나갈 것이라 믿는다.

문제는 가격이다. 너무 비싸지 않게 하고 싶지만 쉽지가 않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재료비와 인건비, 주차 공간 확보, 발레파킹…. 이외에도 유지비가 만만치 않다. ‘더 그린테이블’은 오너 셰프가 사비를 들여 만든 작은 개인 가게이다. 그러다 보니 혼자 모든 것을 감당할 수밖에 없어 막막할 때가 많다. 학교에서 배우고 이론상으로는 정리되던 일들이 실제 경영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다.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이제 조금 알겠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을까, 그래도 알뜰살뜰 아끼면서 여기까지 잘 온 것 같다. 힘들었지만 일을 하며 느끼는 보람이나 성취감이 크기에 견딜 수 있었다. 물론 가끔은 그 보람이나 성취감이 무참히 무시당하는 일들이 일어난다. 바로 당일 예약 취소나 애매하기만 한 코키지로 인한 일들이 그것이다. 막상 이 이야기를 하려니 조금 떨린다. 지탄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프렌치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셰프들은 다른 레스토랑보다 조금 더 고달픈 것 같다. 준비해놓아야 할 재료는 또 왜 그리 많은지. 좋아서 고집하는 일이니 투정을 부릴 수도 없는 일이다. 또 대부분 코스 메뉴를 준비하는 입장이다 보니 신선한 재료는 기본이다. 신선한 재료를 따라올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으니까. 전날 저녁이나 빠르면 2~3일 전부터 코스 예약 손님의 음식 준비를 시작한다. 비싸지만 질 좋은 생선과 해산물을 사고 신선한 채소와 과일 등 재료 손질에 여념이 없다. 그러니 예약 취소를 접할 때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로 끝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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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예약 취소는 말 그대로 당일 아침이나 몇 십 분 전에 전화로 사정이 생겨서 못 가겠다며 취소하는 것이고, 노쇼(No-show)는 예약을 한 후 일절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일이다. 코키지는 손님이 직접 와인을 가져왔을 때 레스토랑에서 제공하는 와인 잔과 서비스에 대한 금액이다. 손님들은 아실까, 이런 일들이 레스토랑에서는 얼마나 굵직한 사건이며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노쇼의 경우, 대부분 전화를 드리면 받지 않거나 통화가 가능하다고 해도 이미 다른 곳에서 식사하고 계시는 것이 감지된다. 그런데 이때 전화를 받지 않으면 굉장히 곤란한 일이 발생한다. 제일 좋은 자리를 비워놓은 채 마냥 기다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혹시나 늦게라도 오실까 봐 다른 분께 자리를 드리지도 못하고 일하는 내내 마음만 불편하다. 실제로 2011년 가을에 예약 없이 오신 손님들이 원했던 자리가 디너 내내 노쇼인 상태인 걸 보시고는 굉장히 역정을 내신 적이 있다. 며칠 전에 중요한 일이라며 예약을 한 그분은 결국 오지 않으셨다. 우리는 당연히 먼저 예약을 했으니 좋은 자리로 미리 세팅했고, 예약 없이 오셨던 분들께는 그 자리를 내어드리지 못했다. 처음부터 본인들의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식사가 끝나는 순간까지도 그 자리가 채워지지 않는 걸 보시고는 우리가 자신들을 무시해서 좋은 자리가 비어 있음에도 안내하지 않은 거라고 단단히 오해를 하셨다. 직원들이 아무리 설명을 해드려도 풀어지지 않았던 슬픈 밤이었다.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마음속이 답답해진다.

코키지는 대부분 2만~5만 원대로 운영하고 있다. ‘더 그린테이블’에선 처음에는 코키지를 받지 않았다. 그랬더니 문제가 있어 지금은 2만 원으로 정해 받고 있다. 프리 코키지를 할 경우 한 병 정도를 가져오셔서 우리 음식과 함께 드실 거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몇 분이 너무 많은 와인을 가져오셔서 지치기도 했다. 레스토랑에도 요리와 어울리는 와인이 갖춰져 있지만, 특별한 날이거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와인을 직접 챙겨와 즐기고 싶은 손님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실제로 어떤 분께서는 아끼던 와인 한 병을 좋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가져왔다며 미안하다는 말씀을 전해 지친 마음을 풀어주기도 하신다. 또 어떤 분은 본인이 가져온 와인 외에 식전주인 아페리티프 Aperitifs 와인을 한 병 더 주문하는 센스를 발휘하시기도 한다. 작은 배려가 큰 감동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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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말았다. 저녁 시간에 8명 단체 코스를 예약한 손님께서 전화로 예약을 취소하신 거다. 기운이 쭉 빠지고 화가 나지만 한숨 한 번 쉬고 넘겨야지, 별도리가 없다. 단체 테이블의 급작스러운 취소, 이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 예약 테이블 테이스팅 메뉴를 위해 갑오징어를 사서 아침에 손질을 끝냈고, 광어 한 마리도 이미 도착했다. 달팽이 손질도 끝났고, 한우는 쓰임에 맞게 잘라놓았다. 또 혹시 몇 분은 랍스터를 주문하실 수도 있으니 랍스터도 몇 마리 더 주문한 상태이다. 이런 모든 준비가 짧은 전화 한 통으로 다 소용없는 일이 되고 만다.

요즘 셰프들이 SNS에 올리는 글들을 보면 이런 갑작스러운 예약 취소에 대한 넋두리를 간간이 볼 수 있다. 나도 몇 주 전 겪은 일을 올린 뒤 곧 이은 격한 공감의 반응에 도리어 겁이 난 적이 있다. 몇 주 전, 전화할 때부터 대단한 모임임을 계속 강조하며 예약한 분이 계시는데 와인을 6병이나 가져올 거라면서 코키지가 너무 비싸니 깎아달라고 말씀하기도 하셨다. 이후에도 전화를 많이 주셨고 당연히 우리는 만반의 준비를 다 끝낸 상태로 기다렸는데 오후쯤 돼서 여기가 너무 멀다는 이유만으로 장소를 바꾸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마 코키지를 받지 않는 다른 레스토랑을 찾아 예약하셨을 것이다. 예약 취소에다 코키지 문제까지 동시에 터져버리니 어찌나 당황스럽고 화가 나던지. 끔찍한 순간이었다.

외국의 경우 예약 시 미리 카드로 식사비의 몇십 퍼센트를 재료비 명목으로 부과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몇몇 레스토랑에서도 이렇게 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정서상 맞지 않아 손님들의 눈치를 보다가 포기하고 만다. 이런 예약 취소가 자주 있겠나 싶겠지만, 막상 경영하는 입장이 되면 꽤 빈번함을 알 수 있다. 미리 공들여 재료를 준비하는 시간이나 비용에 대해 누구한테도 하소연할 수 없는 점이 참 답답하다.

‘더 그린테이블’의 셰프인 나를 포함해서 많은 젊은 요리사들이 단지 요리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주방에서 땀을 뻘뻘 흘려가며 음식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러니 음식에 대한 정성은 생각지도 않고 그저 비싸다고만 트집을 잡으면 할 말이 없다. 그저 서글퍼질 뿐이다. 이런 일을 겪고 나면 내가 왜 이걸 하겠다고 고집을 피워서 요리사들뿐 아니라 우리 가족들까지 못살게 굴고 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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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을 시작할 때부터 큰돈을 들였고, 어머니는 큰 수술을 하실 때도 연말에 바쁜 막내딸 걱정에 비밀로 하셨다. 가족 여행에 함께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주변 친구들의 경조사에도 제대로 가보지 못한다. 이런 일을 도대체 왜 하고 있을까, 사람 구실도 제대로 못 하면서 이 일을 계속 고집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렇다고 많은 돈을 벌지도 못하니 당연히 직원들 월급도 마음같이 줄 수가 없다. 한 번 이렇게 기운이 빠지면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를 물고 계속 커져만 간다. 그런 날은 온종일 온통 후회와 안타까움뿐이다. 하지만 이내 훌훌 털고 일어나야 한다.

오너가 힘이 빠지면 직원들도 자연히 그렇게 되니까 괜한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힘을 내본다. 마음속 눈물은 걷히지 않았지만 많은 분이 이런 현실을 알게 된다면 우리의 외식 문화가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희망을 걸어본다.

그래도 그 많은 레스토랑 중에서 교통도 불편한 서래마을 구석에 자리 잡은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 ‘더 그린테이블’을 찾아주시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격려를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식사하기 위해 짧게는 몇십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이나 걸리는 거리를 힘들게 찾아오시는 걸 알기에 그 정성에 보답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매일매일 직원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얼마나 고마운 분들인지 잊지 말자고 이야기하고 있다. 음식에 대한 아름다운 집념을 버릴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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